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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만들기/마음과 관계 속의 행복

낙관성과 행복

by 행복 리부트 2025. 10. 20.


"반쯤 채워진 물컵은 반이나 남은 것일까, 반밖에 없는 것일까?" 이 흔한 질문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즉 '낙관성' (optimism)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어떤 이는 희망을 보고, 어떤 이는 결핍을 본다. 낙관성은 긍정적인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역경 속에서도 밝은 면을 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태도이며, 이는 궁극적인 행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낙관성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비관성' (pessimism)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실패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도 "잘 될 거야", "이것 또한 지나갈 거야"와 같이 희망적인 생각을 유지한다. 심리학자들은 낙관성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연구한다.
첫째, 성향적 낙관성이다. 이는 개인이 전반적으로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찰스 카버 (Charles Carver)와 마이클 샤이어 (Michael Scheier)는 삶의 지향 검사를 통해 이러한 성향적 낙관성을 측정했다.

둘째, 설명 양식으로서의 낙관성이다. 이는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 (Martin Seligman)이 강조한 개념이다. 개인이성공과 실패 같은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가 결정된다. 낙관적인 설명 양식을 가진 사람은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 같은 내적이고 안정적인 요인으로 돌린다. 반면 실패는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요인으로 돌린다.

셀리그만은 낙관적인 설명 양식이 학습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무기력감에 빠지지 않고,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낙관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낙관성은 단순히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아내는 삶의 지혜이자 능력이다.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1. 전기가 흐르는 상자 속의 개들. 1967년,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세 그룹의 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각 그룹을 다른 환경에 놓았다. 실험의 설계는 간단했다. 개들에게 불쾌하지만 해롭지는 않은 전기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룹별로 주어진 조건은 달랐다. 첫 번째 그룹의 개들은 상자 속에서 전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개의 코로 벽에 있는 패널을 누르면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었다. 개들은 곧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충격이 시작되면 재빨리 패널을 눌러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났다. 통제권을 학습한 것이다. 두 번째 그룹의 개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 역시 전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패널이 없었다. 어떤 행동을 해도 전기 충격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고, 개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났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개들은 첫 번째 그룹의 개들과 한 쌍으로 묶여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의 개가 패널을 눌러 전기를 끊어야만, 두 번째 그룹의 고통도 함께 멈췄다. 즉, 그들의 운명은 다른 개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무기력을 학습한 것이다.
세 번째 그룹은 통제 집단이었다. 이들은 어떤 전기 충격도 받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게 상자 안에 머물렀다. 여기까지는 실험의 준비 단계였다. 진짜 실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셀리그만은 세 그룹의 개들을 모두 새로운 환경으로 옮겼다. '왕복 상자'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이 상자는 가운데가 낮은 담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 바닥에서 전기 충격이 가해지면, 개는 담을 뛰어넘어 반대편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안전하게 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매우 간단한 과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첫 번째 그룹, 즉 스스로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웠던 개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충격이 시작되자마자 이리저리 탐색했다. 그리고 금방 담을 넘어 반대편으로 피하는 법을 터득했다. 세 번째 그룹, 아무런 경험이 없던 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쉽게 담을 뛰어넘어 위기를 벗어났다. 문제는 두 번째 그룹이었다. 어떤 행동으로도 충격을 멈출 수 없었던, 무기력을 학습한 개들이었다. 그들은 전기 충격이 시작되자, 담을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낑낑거리며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낼 뿐이었다. 몇몇 개는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명백한 탈출구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그 문은 보이지 않았다. 이전의 경험이 그들의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어차피 내가 뭘 해도 소용없어." 이 절망적인 믿음이 그들의 발을 묶었다. 셀리그만은 이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불렀다.

2.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 실험은 단지 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셀리그만은 이 원리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복되는 실패나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와도 쉽게 포기해 버린다. 과거의 경험이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학생이 수학을 유독 어려워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시험만 보면 계속해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학생은 점차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원래 수학 머리가 없나 봐. 해봤자 소용없어." 이 믿음이 자리 잡는 순간, 학습된 무기력이 시작된다. 이후로는 정말로 수학 공부를 하지 않는다. 쉬운 문제가 나와도 일단 어렵다고 단정하고 풀어보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선생님이 와서 쉽게 가르쳐줘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과거의 실패 경험이 "넌 안돼"라고 속삭이며 발목을 잡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욕 넘치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하지만 번번이 상사에게 "현실성이 없다", "지금 할 일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의 열정은 식어버렸다.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 그저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동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도 "어차피 안 될 텐데"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는 '거절'이라는 전기 충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시도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기력을 학습한 것이다.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들에게서도 학습된 무기력은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왜 벗어나지 못해? 그냥 그 관계를 끊어버리면 되잖아." 하지만 피해자들은 수없이 벗어나려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마다 좌절되고, 더 큰 폭력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믿음이 깊게 뿌리내린다. 결국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거나, 탈출할 기회가 생겨도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린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3. 무기력의 세 가지 얼굴. 셀리그만은 학습된 무기력이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첫째, 동기적 결손이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은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진다. 강아지들이 담을 넘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굳이 노력해서 뭐해? 결과는 똑같을 텐데." 이런 생각이 모든 행동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점차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둘째, 인지적 결손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능력이 저하된다. 설령 성공적인 결과를 얻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노력 덕분이 아닌 '우연'이나 '운'으로 치부해 버린다. 반면, 작은 실패는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역시 나는 안돼." 이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 왜곡된 생각은 무기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해결책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정서적 결손이다. 무기력은 우울, 불안, 좌절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는 결국 만성적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된다.

4. 절망의 반대편, 학습된 낙관주의.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까? 셀리그만의 대답은 '아니오' 다. 그는 무기력이 학습된 것이듯, 희망 역시 학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학습된 낙관주의라고 불렀다. 핵심은 해석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실패와 같은 나쁜 일을 마주했을 때, 이를 영속적이고, 보편적이며,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항상 이 모양이야." (영속적)  "나는 모든 걸 망쳤어." (보편적)  "이건 다 잘못이야." (개인적) 반면, 낙관적인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한다."이번에는 운이 나빴을 뿐이야." (일시적)"이 일은 잘 안 풀렸지만, 다른 건 괜찮아." (특수함)"상황이 좋지 않았어." (외부적 요인) 이 작은 해석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해석 방식을 바꾸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실패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다시 일어서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마치 개들에게 담을 억지로 넘겨주며 "너도 할 수 있다"는 성공 경험을 각인시켰을 때, 그들이 무기력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전기 충격을 마주한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 이후에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무기력의 주문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이번엔 달랐을 뿐, 나에겐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라는 낙관의 언어를 배울 것인가.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를 가두는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세운 벽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열쇠 또한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낙관성은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 회복탄력성, 그리고 궁극적인 행복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첫째, 높은 심리적 안녕감과 긍정적 정서 경험. 낙관적인 사람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므로, 일생활에서 더 많은 기쁨, 만족,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그들은 작은 성공에도 감사하고,

에드 디너 교수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면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는 전반적인 행복 수준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 (Ed Diener)의 연구는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낙관성은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둘째, 강력한 회복탄력성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 삶의 역경과 실패에 직면했을 때, 낙관적인 사람은 이를 일시적인 문제로 여기고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좌절에 빠지기보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한다. 심리학자 수잔 코바사 (Suzanne Kobasa)는 강인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복력을 높이는 요소를 설명했는데, 이는 통제감, 참여, 그리고 도전 의식으로 구성되며, 낙관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낙관성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높은 성취 (achievement)와 목표 달성. 낙관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목표 설정에 적극적이다. 그들은 어려운 목표에도 기꺼이 도전하고, 실패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다시 시도한다. 심리학자 안젤라 덕워스 (Angela Duckworth)의 '그릿' (grit) 이론처럼,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열정과 끈기는 낙관적인 태도와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연구에 따르면, 낙관적인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직장인들은 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다. 목표 달성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넷째, 건강한 신체적 건강과 장수. 흥미롭게도 낙관성은 심리적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낙관적인 사람은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더 낮고, 건강한 생활 습관 (예: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면역 체계가 더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고, 전반적인 수명 연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는 낙관적인 여성이 장수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은 행복의 필수적인 기반이다.

그렇다면 낙관성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낙관성은 타고나는 성향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인 노력과 연습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는 기술이다. 다음과 같이 해보자.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을 지도 모른다. 첫째, 자신의 설명 양식을 점검하자.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내 탓이야", "나는 항상 이래"와 같이 비관적인 설명 양식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파악해야 한다. 둘째, 부정적인 생각을 논박하자. 셀리그만의 'ABCDE 모델' 처럼, 부정적인 믿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항상 실패하는 건 아니잖아", "이건 일시적인 문제일 뿐이야"와 같이 더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안적 설명을 찾아야 한다. 셋째,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자. 매일 감사할 일 세 가지를 기록하는 것은 삶의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게 하여 낙관성을 높인다.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 (Robert Emmons)의 연구는 감사가 행복을 증진시키는 강력한 방법임을 입증했다.

 

 

넷째, 성공 경험을 되새기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자. 과거에 자신이 잘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긍정적인 기대를 심는 것도 효과적이다. 다섯째, 긍정적인 사람들과 교류하자. 주변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자신의 마인드셋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비관적인 사람들 과의 교류는 줄이는 것이 좋다.

낙관성은  현실을 낙천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선다. 이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으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더 높은 심리적 안녕감, 강력한 회복탄력성, 뛰어난 성취, 건강한 신체, 그리고 궁극적인 행복이라는 걸작을 그려낸다.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통찰은 낙관성이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며,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핵심임을 보여준다.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에만 달려 있지 않다. 삶의 캔버스에 밝은 색채를 덧입히고, 희망이라는 빛을 그려내는 낙관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오늘부터 당신의 내면에서 낙관성이라는 긍정적인 화가를 깨우고, 행복이라는 걸작을 함께 그려나가는 것은 어떨까? 그 밝고 희망찬 여정은 분명 당신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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